운이 차지하는 비중을 실제보다 훨씬 과소평가하는 인간의 사고방식과 엄청난 규모의 예외 현상이 일어나는 불확실성을 일컫는 '펫테일'이라는 두 가지 분야에 대해서 고민했다.
사람들이 결정론으로 치우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은 항상 필연으로 보이기 때문(후견지명 편향. 사후확신 편향)이다.
확률은 주사위나 더 복잡한 변수로 승산을 계산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지식이 불확실함을 인정하고 무지를 다루는 방법을 개발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두뇌는 확률 개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므로 '모 아니면 도'의 방식으로 단순화하려고 덤빈다.
끈기와 인내 같은 전통적 가치들도 성공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우리 두뇌는 때때로 인과관계를 거꾸로 파악한다. 훌륭한 자질 덕분에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이 모두 똑똑하고 근면하며 인내심이 있다고 해서, 그 반대로 똑똑하고 근면하며 인내심 있는 사람들이 모두 성공한다는 뜻은 아니다.
논리에는 실증이 필요 없다.
운 좋은 바보일수록 자신이 운 좋은 바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이들이 운 좋은 바보인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부자가 될 자격 이 있는 것처럼 행세한다. 잇단 성공 덕에 세로토닌이 다량으로 분비되면서, 자신에게는 돈 버는 실력이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지경에 이른다.
자칭 이익 지향적인 사람들은 일어나지 않은 역사에 대해 말하면 짜증스러워한다. 낭비벽 심한 이익 지향적 인간을 경계하라. 시장에는 자칭 이익 지향적 인간들의 무덤이 즐비하다.
수학은 사고의 도구이지, 계산의 도구가 아니다.
돈을 잃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시점에 돈을 잃었다. 크든 작든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그 위험에 일격을 당하는 일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파산한 트레이더들의 특징을 보면, 자신이 시장을 잘 파악하고 있으므로 불리한 사건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들이 위험을 감수한 것은 용감해서가 아니라 단지 무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이번에는 다르다" 또는 "우리 시장은 다르다"고 주장하며 체계적이고 지성적인 듯한 경제 논리를 내세웠다. 누구나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하므로 정작 진단을 받게 되면 "왜 하필이면 내가?"라며 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우리가 과거를 돌아볼 때 그것은 늘 하나의 사건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과거의 역사는 마치 결정론인 것으로 보인다. 답을 아는 상태에서 시험을 치른다고 상상해보라. 역사는 시간과 함께 흘러가지만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서 역사를 보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의 사고는 세상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기 보다는 재빨리 곤경을 모면하면서 결과를 얻도록 설계되어 있다. 사람들이 이후에 얻은 정보 때문에 사건 당시 자신의 지식을 과대평가하는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후견지명편향, 즉 "나는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어" 효과라고 부른다.
실수란 사후적으로 평가할 대상이 아니라, 당시까지 존재한 정보를 바탕으로 평가할 대상이다
시간 단위가 짧으면 실적이 아니라 변동성을 보게 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 있어서까지 합리적이고 과학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해를 입히고 생존을 위협하는 경우에만 합리적이면 된다. 현대 생활은 우리를 정반대 방향으로 몰고 가는 듯하다. 종교나 개인적 행동 문제에 대해서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지성적이 되는 반면,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처럼 운에 지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지극히 비합리적이 된다.
이것은 산업 전반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징조였다. 업계 트레이더들이 모두 똑같은 거래를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른 트레이더들도 곤경에 빠졌다는 말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진정한 트레이더의 사고 구조라면, 다른 트레이더들이 가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일정 시점에서 보면, 가장 큰 성공을 거두는 트레이더는 시장의 최근 순환 주기에 가장 잘 맞는 트레이더다. 치과의사나 피아니스트에게는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직업은 운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아니라, 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얼마를 버느냐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주 이익이 발생하느냐가 아니라, 그 결과 발생하는 이익의 규모다.
편향에 대한 베팅. 자주 발생하지는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희귀사건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업. 희귀 사건은 공정하게 평가되지 않으며, 사건이 더 희귀할 수록 가격이 더 저평가된다고 생각
중앙값과 평균을 착각하는 전통적 오류
다시 말해서 과거에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도 반드시 일어난다는 사실을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추론의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데이터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전문가들이 더 빠르고 확실하게 함정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데이터 양이 많아질수록 정보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쉽다. 확률에 대해 어설프게 알면 전혀 모를 때보다 더 안 좋을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원숭이에 해당하는 인간의 숫자를 셀 수 없으뿐더러 아예 볼 수도 없다. 이들은 숨겨져 있기 떄문에 오로지 승자만 볼 수 이다. 실패한 사람들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생존자만 보게 되며, 그래서 확률을 잘못 인식하게 된다. 사람들은 확률이 아니라 승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반응하게 된다.
1. 우리는 승자만 보기 때문에 확률을 보는 관점이 왜곡된다.
2. 엄청난 성공의 원인은 대부분 운이다.
3. 인간은 생물학적 장애 탓에 확률을 이해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아니라, 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얼마를 버느냐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주 이익이 발생하느냐가 아니라, 그 결과 발생하는 이익의 규모다.
편향에 대한 베팅. 자주 발생하지는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희귀사건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업. 희귀 사건은 공정하게 평가되지 않으며, 사건이 더 희귀할 수록 가격이 더 저평가된다고 생각
중앙값과 평균을 착각하는 전통적 오류
파크 애버뉴에 살면 실패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성공한 사람들만 보게 된다. 사람들은 아주 작은 공동체에 속해서 산다. 그래서 자신이 살고 있는 좁은 거주지를 벗어나 넓은 관점에서 자신을 평가하기가 어렵다. 상당한 심리적 고통을 겪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닛은 매우 성공한 남자와 결혼했지만, 남편을 공정하게 평가해주는 표본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인 패배감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회적 챗바퀴 효과에서도 벗어나기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인간은 본래 합리적인 생각을 하기도 어렵고, 사회적 모욕감을 참기도 힘들다. 트레이더 생활을 하면서 나는 기질을 거슬러가며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 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순전히 이기적인 행위이지 공익적 행위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장점은 박애가 아니라 탐욕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생존편향을 무시하는 것은 전문가들도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실수다. 왜 그럴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고 눈앞에 보이는 정보만 이용하도록 길들었기 때문이다. 통계가 옳기는 하지만, 지나간 역사일 뿐이다. 나는 4만 종목의 증권 중에서 매년 빠짐 없이 수익률이 두 배가 되었던 증권도 찾아서 보여줄 수 있다. 우리는 수많은 대체 역사 가운데 실현된 사건 하나를 보고 이를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생존편향은 실력이 가장 좋은 사건이 가장 눈에 잘 띈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패배자는 모습을 감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낙관주의가 성공의 전조라고 말한다. 성공의 전조라니? 실패의 전조가 될 수도 있다. 낙관적인 사람들은 승산을 과시하기 때문에 분명 위험을 더 많이 떠안는다. 성공한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유명해져서 전면에 등장하지만, 실패한 사람들은 분석에서도 사라진다.
인간의 두뇌는 비선형성을 이해하기에 부적합하다. 두 변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을 때, 사람들은 한 변수에 꾸준히 입력하면 다른 변수에 반드시 결과가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의 심리가 인과관계를 선형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매일 공부하면 무엇인가를 배운다고 생각한다. 매일 공부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느낌이 들면 심리적으로 사기가 저하된다. 1년 동안 공부해도 전혀 배우지 못할 수 있지만, 허망한 실적에 상심해서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지난 200년간 경제학적 사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인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앨프리드 마셜도, 폴 새뮤엘슨도 아닌 두 신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다. 이들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인간은 확률적 사고와 최적화된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밝혀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 이후 행동재무학과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크게 발전했다. 실증 과학과 규범 과학의 차이를 알아보자. 규범 과학은 사물이 마땅히 어떡게 해야 하는지를 연구한다. 예컨대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믿는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자신에게 최선이 되므로, 이 가정 하에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반대 관점이 실증 과학인데 사람들의 실제 행동을 관찰하여 연구를 진행한다.
거시경제학과 금융경제학을 포함한 경제학은 규범 과학이 주도하고 있다. 규범 경제학은 아름다움이 빠진 종교와 같다. 대니얼 카너먼과 실험주의 경제학자 버넌 스미스는 실험 중심 연구를 통해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첫 번째 진정한 과학자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동기 부여를 해도 사람들의 편향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편향: 인간은 추상적인 위험을 위험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오렌지보다 사과를 좋아할 수 있고, 배보다 오렌지를 좋아할 수도 있고, 사과보다 배를 좋아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동시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편향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림법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추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식은 전체보다 부분에 좌우되며, 행복감도 이런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 100만 달러를 거저 얻었다고 가정하자. 다음 달에 30만 달러를 잃느다. 이제 재산이 감소하였으므로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게 되는데, 아예 처음부터 70만 달러를 받았거나, 더 좋게는 35만 달러씩 두 번 받았다면 이런 고통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 두뇌는 총액보다 증감을 더 쉽게 인식하므로, 부유한지 가난한지 판단할 때도 다른 기준을 동원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사물을 어떤 기준과 비교하는 효과를 '기준점 효과'라고 부른다. 이 논리를 극단적으로 확대하면, 사람은 항상 기준을 재설정하기 때문에 재산 자체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잇다. 하지만 재산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처럼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때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응답자들은 소규모 표본에서 나온 결과를 지나치게 신뢰했으며, 이들의 통계적 판단은 표본 규모와 거의 상관이 없었다.
추론 시스템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어림법이고, 하나는 합리성이다. 시스템 1이 관장하는 활동은 힘들지 않고, 자동적이고, 연상적이고, 신속하고, 평행 프로세스이고, 불투명하고, 감정적이고, 확고하고, 구체적이고, 사교적이고, 개인적이다. 시스템2가 관장하는 활동은 힘들도, 통제적이고, 연역적이고, 느리고, 연속적이고, 자각적이고, 중립적이고, 추상적이고, 집학적이고, 비사교적이고, 객관적이다.
데카르트의 오류는 매우 단순한 가설을 제시한다. 누군가의 뇌에서 일부를 제거하여 감정만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IQ와 다른 기능은 모두 그대로 유지된다. 이것은 지능과 감정을 분리하는 일종의 통제 실험이다. 이제 느낌이나 감정의 방해를 받지 않는 순수하게 합리적인 인간이 등장했다. 하지만 디마지오의 보고에 따르면, 완전히 비감정적인 사람은 아주 단순한 결정조차 내릴 수가 없었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고, 이리저기 재기만 하면서 시간을 낭비했다. 감정이 없으면 인간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학문제를 풀때도 똑같았다. 뇌의 크기는 같지만, 많은 변수를 놓고 최적화 작업을 수행할 때 아주 단순한 판단을 내리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감정이 이런 시간 낭비를 막아준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감정을 '이성을 돕는 윤활유'라고 부른다.
배운 사람들이 더 끔직한 실수를 저지른다. 내가 결합 사건의 확률이 각 사건의 확률보다 낮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가용성 어림법을 기억하라. 나는 어떤 변호사를 보면 겁이 난다. 내가 말도 안되는 이유로 체포 당해 확률을 전혀 모르는 배심원 앞에서 입심 좋은 변호사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O.J.Simpson 판례). 우리가 사는 물리세계에서는 3차원까지만 시각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불량 모델을 사용하거나, 무지를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우리 행동을 주로 인도하는 것은 뇌의 이성을 관장하는 부위가 아니다. 우리는 감정을 통해서 생각하며, 이를 피할 방법이 없다.
통계적 유의성과 인과관계. 그 사건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있는가? 인과관계가 매우 복잡한 경우에는 한 가지 원인을 찾아내기가 매우 어렵다. 이 것을 다변량 분석이라고 부른다. 나는 세상에서 실제로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지 찾아내는 방법을 고안했다. 요령은 백분율 변화가 큰 변수만 보는 것이다. 일상적인 하루 변동률을 넘어서진 않는 사건은 소음으로 간주한다. 어떤 사건의 변동률이 2%라면, 이 것은 변동률이 1%인 사건보다 2배 중요한 것이 아니라, 4~10배 중요하다. 7% 변동 사건은 1% 변동 사건보다 수십억 배 중요하다. 우리는 통계의 비선형적 속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운을 다루는 직업을 통해서 나 자신이 감정을 다스릴 만큼 똑똑하지도 강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아이디어를 체계화시키기 위해서는 감정을 사용해야 한다. 단지 내가 운에 속기 쉽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감성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만큼만 똑똑하다. 나는 감정에 지배받는다. 나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다. 더 나쁜 사람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오랜 세월 확률을 공부하고 이해하려고 애썼어도, 나의 어리석은 유전자 탓에 감정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두뇌가 신호와 소음을 구분한다고 해도 나의 가슴은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내 소득은 근시 때문에 안경을 쓰면서부터 상승하기 시작했다. 야간 운전을 제외하면 안경을 쓸 필요가 없었지만, 실적과 안경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믿고 있기라도 하듯이 나는 항상 안경을 썼다. 내 두뇌는 표본 규모가 너무 작아서 실적과 안경 사이에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이해했지만, 내 순진한 통계 본틍은 내가 가설 검증의 전문가인데도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 같았다.
두 사건 a와 b를 볼 때, a가 b에 영향을 주거나, b가 a에 영향을 주거나, a와 b가 상호 영향을 준다고 가정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즉시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믿어버린다. 초보 투자자라면 그 결과 푼돈을 잃는 정도로 그치겠지만, 과학자라면 엉터리 추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실적이 사전에 정해둔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실적 보고서를 절대로 보지 않았다. 문제는 아는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노르푸아 후작은 종전과는 다른 견해를 내세웠다는 이유로 수치를 당한다. 프루스트는 그가 생각을 바꿨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원래 의견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신자가 된다. 이제 나는 노르푸아 후작이 트레이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평생 만나본 사람 중 최고의 트레이더는 나이젤 배비지인데, 자신의 과거 신념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어떤 통화가 약세가 될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으면서도, 불과 몇 시간 뒤에는 전혀 거리낌 없이 충동적으로 그 통화를 매수한다. 왜 생각이 바뀌었을까? 그는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이런 특성을 타고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가 조지 소로스다. 그가 지닌 강점 중 하나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순식간에 자신의 견해를 뒤집는 것이다. 소로스의 바로 이런 속성 때문에 몇 년 뒤 로잔은 하마터면 일자리까지 잃을 뻔했다. 1980년 말에 소로스가 2,000만 달러를 투자하자 로잔은 트레이딩 회사를 설립했다. 며칠 뒤 소로스가 파리를 방문했고, 이들은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눠었다. 로잔은 소로스가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후 소로스는 아무 설명도 없이 자금을 모두 회수했다. 소로스 같은 진정한 투기꾼들의 특징은 경로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과거 행동에 전혀 구속받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백지 상태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경로에 얽매이는지를 간단하게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당신이 0.7이더를 주고 메타콩즈를 샀는데, 리브랜딩에 대한 기대 덕분에 지금은 1.4이더로 가격이 올랐다. 만일 당신에게 이 그림이 없다면, 현재 가격으로라도 메타콩즈를 사겠는가? 사지 않을 생각이라면, 당신은 메타콩즈에 얽매였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 가격에 사지 않을 메타콩즈라면 계속 보유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자신의 아이디어에 얽매인다. 처음 얻은 신념이 너무 강해서 계속 유지될 때, 그 신념에 얽매인다고 말한다.
아이디어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어떤 견해를 지지하여 유명해진 학자라면,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얻은 자신의 과거 업적에 해가 될 만한 말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학자들이 트레이딩을 하다가 파산하면, 여기에서 얻은 정보를 이론에 통합하고 나서, 자신들이 틀렸지만 이제 현실 세계로부터 뭔가를 배웠다고 당당하게 말하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 이들은 시장의 거래 상대들이 독수리 떼처럼 달려드는 바람에 무너졌다고 불평을 늘어놓을 뿐이다. 이들은 새로 배운 사실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대신 자신을 방어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했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반박당했을 때 보이는 이런 행동을 이른바 귀인 편향이라고 부른다. 성공하면 자기 실력이고, 실패하면 운 탓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 과학자들은 자신의 실패를 희귀사건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소로스를 보라. 그는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자신이 틀리기 쉽다고 털어놓는다. 나느 소로스로부터 얻은 교훈을 살려, 매일 아침회의 때마다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며 실수하기 쉬운 멍청이들이지만, 천만다행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일깨워준다.
사람들은 과학과 과학자를 혼동한다. 과학은 위대하지만, 과학자 개개인은 위험하다.
LTCM이 붕괴하고 나서 새로운 금융경제학자가 나타나, 관련 지식을 과학에 통합시킬 것이다. 이번에도 늙은 과학자들이 저항하겠지만, 장례를 먼저 치르게 되는 사람은 늙은 과학자들일 것이다.
서사시의 영웅들은 결과가 아니라 행동을 평가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다. 우리가 아무리 정교하게 선택하고, 운을 잘 지배할 수 있다고 자만해도 결국 최후는 운이 결정할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해결책은 품위뿐이다. 품위란 환경에 직접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계획된 행동을 실행한다는 뜻이다. 그 행동은 최선이 아닐 수도 있지만, 분명히 최상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이다.
억압 속에서 품위를 유지하라. 이는 아무리 보상이 크더라도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태도다.
감성이 활동을 시작하면 지성은 뒤로 물러난다. 현실 세계에서는 우리의 합리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이제 불행을 만나면 개인적 품위에 초점을 두라.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혜롭게 사는 모습을 보여라. 사형 집행일에 가장 화려하게 차려입어라. 품위 있게 똑바로 서서 사형진행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라. 암 진단을 받았을 때에도 불운을 맞이한 피해자처럼 처신하지 마라. 손실이 발생해도 부하 직원에게 지극히 공손하라. 다른 사람의 잘못이었더라도 자신의 운명에 대해 남을 비난하지 마라. 자신을 동정하지 마라. 불펴앟지 마라. 행운의 연신도 어쩌지 못하는 유일한 대상이 바로 당신의 행동이다.
기여와 보상은 반비례: 과정에 의한 평가와 실적에 의한 평가를 비교해보자. 회사의 하급 직원들은 과정과 실적을 모두 평가 받는다. 실제 이들의 업무는 반복적이므로 과정과 실적이 대게 일치한다. 최고경영진은 과정과 상관없이 실적으로만 평가받는다. 실적만 좋게 나오면 어리석은 결정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여겨진다. 사람들은 흔히 돈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최고경영진의 경영철학으로 간주한다. CEO가 내리는 결정은 분명 반복적인 성격이 아니다. 이는 카지노에서 100만 달러를 한번에 거는 사람의 행동과 비슷하다. 위험은 주주들이 부담하고, 보상은 임원들이 차지한다.
운이 주는 혜택: 때로는 불확실성이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일정 수준의 불확실성은 결함투성이 인간에게 혜택이 되기도 한다. 일정을 조금만 무작위로 바꾸면 지나치게 효율성을 높이려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불확실성을 조금만 더하면 시간 압박을 잊어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그는 극대화가 아니라 충족을 추구하게 된다. 최적화를 추구하면서 자신을 압박하는 사람들은 즐기는 동안에도 어느 정도 고통을 받는다. 충족을 추구하는 사람과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람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대개 충족을 추구하는 유형이다. 나느 인간이 정확한 일정에 적합한 존재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인간은 소방대원처럼 살아야 한다. 화재가 언제 발생할지 모르므로, 일이 없는 동안에는 편안하게 뒹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야 한다.
불확실성은 삶의 질을 개선시켜줄 뿐만 아니라 정보 면에서도 가시적인 혜택을 제공하는데, 특히 메시지가 자기 충족적이면서 파괴력이 강할 때 그렇다.중앙은행이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는 통화에 대해 생각해보자. 공식적으로 일정 범위를 설정하여 어느 정도 소음을 허용해야 환율이 소폭 하락해도 중요한 정보가 되지 않는다. 일정 소음이 허용되므로 사람들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우리 행동을 어느 정도 예측하지 못하게 되면, 갈등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도 때로는 과잉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상대국에 확실히 인식시켜야 한다. 과잉 반응의 강도 조차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예측할 수 없게 만들면 분쟁을 강력하게 억제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 남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 나머지는 모두 주석에 불과하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마음 깊이 간직한 것, 개인적인 것, 이야기 들은 것, 실체가 있는 것을 좋아하고, 추상적인 것은 경멸한다. 우리에게 좋은 것(미적 감각, 윤리)과 나쁜 것(운에 속는 어리석음)의 차이는 모두 여기서 나오는 듯 하다.
우리가 평상시에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관점, 즉 역사주의적 결정론에 대해 비판한다. 우리 앞에 벌어진 역사는 수많은 대체역사 가운데 우연하게 선택된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도 승자의 관점에서 정리되고 왜곡된 역사이다. 지나간 과거의 역사도 이럴진대, 다가올 미래의 역사에 대해서 어떤 예측이 가능할까?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과거의 역사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결정론에 빠져 있다. 지나간 과거의 역사가 수많은 대체역사 가운데 우연하게 선택된 것처럼 미래의 역사에도 우연성, 즉 운이 크게 개입될 수 있다. 그러므로 미래는 쉽게 예측될 수 없다. 아니 예측하기에는 우연성이 너무 크다. 그래서 과거의 통계를 근거로 함부로 미래를 예측하면 크게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공은 운과 실력의 함수이다. 실력이 없으면 운도 소용없으며, 실력이 쌓일 수록 운도 크게 작용한다. 행운을 바라기 전에 실력이 우선이다. 운을 다루는 방법은 최악의 경우를 감안해서 불운하더라도 크게 지장이 없을 정도로 보수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에 최대한 운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행운을 기대하지 않으면, 불안도 겁나지 않는다.
Political Risk: 콘돌리자 라이스 (0) | 2023.03.05 |
---|---|
제로투원 - 피터틸 (#2) (0) | 2023.03.05 |
제로투원 - 피터틸 (feat. 메타콩즈) (0) | 2023.03.05 |